봄 내내 그룹 위기론이 각종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상했다. 뭐 CEO는 커녕 간부 나부랭이도 되지 못한 내가 당장 다니는 부서나 회사의 위기도 아니고 그룹 계열사의 위기까지 논하고 신경쓰기는 좀 뭐했지만. 가령 1000만원의 이익을 내다가 100만원으로 이익이 난다거나 손해가 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조의 이익이 더 늘어나질 않고 주춤하거나 몇천억쯤 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몇천억? 음..정말 상상이 안되는 돈이지만, 그렇다고 전체적인 흐름에서 대단히 큰일 날 영향의 숫자가 아니었는데 여하간 월급받고 다니는 나보다 일간지들이 나보다 더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 여하간.
그런 뒤숭숭 속에서 여름이 느껴질 즈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곧 명퇴를 받는다는 둥 간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둥 말이 돌았다. 그리고 그 여름이 가기 전에 위기론이 돌던 그 계열사를 비롯하여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간부들을 대상으로 명퇴를 받는다는 공지가(부서장의 입을 통하여) 나왔다. 당시 간부인 회사 선배 몇몇이 나를 찾아와 일련의 명퇴공지가 있을때마다 본인들이 받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더불어 회사를 나가야 하는거 아닌가 갈등을 털어놓곤 했다.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건조한 대화보다 아마 다리 하나쯤 이미 회사 밖에 걸들여놓은 듯한 내가, 여자인 내가 나름대로 편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그들은 회사와 그들의 상사들이 '저놈은 제 때 간부를 시켜도 된다"라는 인증을 하고 회사의 관리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아직 일할 때가 한창인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을 갓 넘은 그런 나이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평일에 집에 가서 가족과 저녁을 먹는 일은 정말 드물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부서에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일이 없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갈등하고 있었고 그 근간에는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이 있어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상담(?)을 왔던 100%의 간부가 회사를 나가지 못했고, 나에게 대화를 걸어왔던 100%의 평사원들은 회사를 나갔다. 정작 회사를 나간 사원급들은 명퇴금 지급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는데 그런걸 보면 사람들의 퇴사에 명퇴금 자체가 영향을 준것은 아닌것 같았다. 회사를 나가지도 못하였으나 나의 선배들은 명퇴를 받는다는 말이 나올때마다 실제 회사의 태도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결정이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에 많이 우울하다는 말들을 남겼었다. 여하간. 그렇게 명퇴라는 화두와 더불어 여름이 갔다.
가을이 왔다. 위기론과 더불어 각종 사업 구조조정 속에 각종 명퇴가 있었고 각종 가장들이 우울해하며 어떤 결정을 내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났으며, 그런 분위기가 싫어 아직 사원일 때 떠난다며 또 누군가들은 떠나고 또 싫던좋던 누군가는 남았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올 봄 일간지들이 월급받고 다니는 나보다 한층 더 많은 걱정을 기울였던 그 그룹 계열사는 3/4분기 대단한 흑자를 내며 다시한번 일간지들의 헤드라인을 일제히 장식했다. 떠난 각종 직원들의 정년까지의 평생의 월급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 흑자의 1/10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여하간 그 위기론을 넘어 그런 흑자가 기록이 됐다. (마도 연말이 되면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사업 다각화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찬양성 기사가 한번 더 나올 것도 같다.)
(후략)
쨔스 (dldmsd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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