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법이 역대 7번째 특검법으로 23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성진 법무장관이 아직 의혹 수준의 폭로에 근거해 판결이 종료됐거나 재판중인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 등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거의 원안대로 통과되고 말았다.
특검은 검찰의 공정한 수사가 어려울 수 있다는 권력형 비리에 한해 재야 법조인에게 수사지휘를 맡기는 제도인데, 이번 삼성특검은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전직 삼성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검사들을 이른바 떡값 등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했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 것이다. 검찰이 공정성 논란을 불식하고자 독립성을 부여한 특별수사·감찰본부까지 구성했지만,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김 변호사의 폭로가 더 신뢰를 받게 돼 버렸다.
이번 삼성특검은 우선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미진한 내용이 있으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점에서 성급함이 지적된다. 특검은 인적 구성 등 수사 착수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안정적인 팀워크 형성이 쉽지 않아 검찰의 일상적 조직력에 바탕을 둔 수사에 비해 그 기동력과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 겨우 내년 초에나 시작될 특검 때문에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국민은 더 오래 기다려야만 한다. 삼성특검은 수사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고, 이미 재판과정에 있는 사건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법리에 위배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더구나 수사기간도 최장 105일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삼성을 기어이 손보겠다는 식의 일부 시민단체와 민노당의 감정적 접근 방식이 버젓이 법률에 반영됐다.
재벌 해체를 강령으로 내세운 민노당이 삼성특검 관철에 총력전을 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특히 민주노총을 주요 기반으로 삼는 민노당은 삼성의 무노조 현상에 대해 잠재적 황금시장이 봉쇄돼 있다며 큰 불만을 가져왔다. 김 변호사의 폭로 후 여당과 민노당에 반부패 연대를 제안하며 국면을 추동해온 창조한국당은 일찌감치 문국현 후보가 깨끗한 기업인이라는 차별화 전략을 써 왔기 때문에 대선 전략 차원에서 삼성특검을 활용했다.
민노당과 창조한국당의 삼성특검에 대한 명백한 정략적 이해관계에 비해 여당의 손익계산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특검을 서둘러 강행했을까. 대선 전략이라면 한나라당에 어떤 타격을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삼성과 한나라당은 아무런 연관도 없다. 여론이 들썩이니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것인가. 근래 판단 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여당이니 만큼 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여당이 삼성특검이 청렴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대했다면 큰 착각이다. 그들은 10년 동안 권력을 누리면서 갖가지 비리에 노출됐고, 통상 야당의 특권인 반부패 장사를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됐다.
한나라당의 삼성특검 동조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0년 만의 집권에 근접한 한나라당이 미래 청사진을 펼쳐 보일 집권 초기에 삼성특검으로 날을 지새우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을 동시에 겨냥한 대선자금 규명에 관심을 가졌다는 해석이 있지만, 대선이 끝난 이후에야 특검이 시작되니 대선의 유불리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번 삼성특검은 소수당의 ‘묻지마’ 이슈 만들기와 거대 정당들의 동상이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오히려 검찰의 수사 의지를 약화시키고 의혹 규명을 지체시키는 이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선과 총선을 앞둔 국면에서 정치인들의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홍진표 /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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